IPP 42 도쿄 — (2)

인생 첫 IPP의 마지막 날이 밝았습니다. 퍼즐 파티, 강연, 시상식에 참석했습니다.

Day 3

Puzzle Party

IPP의 셋째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전날에 안진후 씨가 퍼즐 파티(Puzzle Party)에 대비해서 마음의 준비를 해 두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퍼즐 디자이너와 제작자들이 부스를 차리고 퍼즐을 판매하는 행사인데, 인기 있는 퍼즐들은 금방 매진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하거든요. 현금도 잊지 않고 넉넉히 챙겼습니다.

퍼즐 파티가 개장하자마자 어떤 부스가 있는지 빠르게 훑어본 다음, 가장 먼저 미네 씨의 부스로 향했습니다. 퍼즐 디자인 대회 수상작이었던 Coin WalletKarakuri Packing을 꼭 가지고 싶었는데, 운 좋게도 마침 딱 하나씩 남아 있어서 잽싸게 집어들었습니다.

이번 출품작인 Diagonal Twins도 구매에 성공했는데, 이 작품에 대해서는 뒤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행사장을 돌아다니면서 눈에 띄는 퍼즐을 마구 사들이다가 스티븐 씨의 부스에 도달했습니다. 퍼즐 교환 행사에서 그가 보여 준 볼펜 퍼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식 명칭은 Ze Super Stylus Pen입니다. 이번에 산 퍼즐 중에 가장 비쌌지만, 어떻게 동작하는 퍼즐일까 호기심을 참지 못해서 큰맘 먹고 구매했습니다.

이번 디자인 대회의 또 다른 출품작인 Rombox를 구매하기 위해 야부즈 데미르한 (Yavuz Demirhan) 씨의 부스도 방문했습니다. 저는 야부즈 씨의 Squary Pack 퍼즐 시리즈 중 하나를 소장하고 있는데, Rombox가 그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존 퍼즐과 비슷한 구성이지만 또 다른 흥미로운 움직임이 더해져 있어서,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완벽한 퍼즐이라고 느꼈습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퍼즐이 너무 많은 나머지 준비해 온 현금을 다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심지어는 아직 사고 싶은 퍼즐이 남았는데도 돈이 부족해져서 마르코 씨에게 빌리기까지 했습니다. 안진후 씨는 저희가 첫 IPP 치고는 너무나 능숙하게 원하는 퍼즐을 손에 넣은 것 같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퍼즐 파티가 끝난 뒤에는, 모든 퍼즐을 캐리어에 집어넣는 진짜 현실 패킹 퍼즐을 풀 차례였습니다. 사실은 퍼즐만으로 이미 캐리어가 가득 차버려서 돌아오는 날에 옷가지와 다른 짐을 넣을 가방을 사야만 했답니다.

Lectures

오후에는 네 개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 야마모토 히로시를 기억하며 / The Memory of Hiroshi Yamamoto (Lixy Yamada)
  • 퍼즐 분류하기 퍼즐 - 온 마을의 힘을 합쳐야 한다 / Solving the Cataloging Puzzle - It Will Take a Village (Marc Pawliger)
  • “명백함”과 “불가능”의 사이 / Between "Obvious" and "Impossible" (Koichi Miura)
  • 세계 퍼즐 센터 / World Puzzle Center (Roxanne & George Miller)

모든 발표가 흥미로워서 풀집중 상태로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야마모토 히로시 (Hiroshi Yamamoto) 씨를 만나보고 싶었는데, 그의 Copy Device 퍼즐은 제 Canal 퍼즐에 영감을 준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히로시 씨의 또 다른 대표적인 명작으로는, 대칭 퍼즐(symmetry puzzle) 장르를 유행시킨 Ex 3가 있습니다. 그가 2024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은 릭시 야마다 (Lixy Yamada) 씨의 강연을 듣고서야 알았습니다. 대화를 나눠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마크 폴리거 (Marc Pawliger) 씨의 전 세계 퍼즐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도 흥미로웠습니다. 저 역시 (정확히 몇 개인지도 모르는) 수백 개의 퍼즐을 박스에 대충 아무렇게나 보관해 둬서, 가지고 있는 퍼즐을 찾을 때 애를 먹은 경험이 있죠. 퍼즐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지고 각자의 콜렉션을 관리할 수 있는 앱이 등장한다면 정말 편리할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미우라 코이치 (Koichi Miura) 씨의 발표를 통해서는 그가 퍼즐을 디자인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엿볼 수 있었습니다. 코이치 씨의 퍼즐은 매번 혁신적이고 아름다워서 제 콜렉션에서 가장 소중한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명백히 가능해 보이는 것과 불가능해 보이는 것, 그 사이의 밸런스를 찾으면 흥미로운 퍼즐이 된다는 철학이 재밌었습니다.

마지막 발표에서는 록산 밀러 (Roxanne Miller) 씨와 조지 밀러 (George Miller) 씨가 이탈리아의 성을 매입해서 세계 퍼즐 센터(World Puzzle Center)로 개조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수십 개의 방이 선반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선반들은 다시 퍼즐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퍼즐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요? 언젠가 꼭 이탈리아에 가서 두 발로 직접 그 천국을 걸어 보고 싶습니다.

Awards Dinner

IPP의 마지막은 시상식 만찬(Awards Dinner)이 장식했습니다.

강연이 시작하기 전까지 퍼즐 디자인 대회의 투표용지를 제출해야 했는데, 단 다섯 개의 작품만 고를 수 있어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했습니다. 표를 주고 싶은 퍼즐이 몇 개 더 있었는데 말입니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작품은 퍼즐러 상(Puzzler's Award)을 받습니다. 또한 심사위원이 선정하는 대상(Jury Grand Prize), 1등상(Jury 1st Prize), 특별상(Jury Honorable Mention)이 있습니다. 수상자는 트로피를 받는데, 트로피마저도 퍼즐입니다!

득표 수 상위 10개에 든 퍼즐은 상을 받지는 못해도 시상식에서 언급되고 대회 홈페이지에도 기재됩니다.

그리고 올해의 퍼즐러 상은… 하시모토 야스히로 (Yasuhiro Hashimoto) 씨의 Diagonal Twins가 차지했습니다!

단 네 개의 단순한 조각만으로 우아한 해법을 완성시킨 이 퍼즐은, 퍼즐러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Diagonal Twins를 보고 카츠모토 하지메 (Hajime Katsumoto) 씨의 Pin Block Case를 연상했는데, 비슷한 외관을 가졌으면서도 대각선을 활용한 이 퍼즐만의 특별함이 있습니다. 두 분은 서로의 작품에 영감을 주고받는 사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야스히로 씨의 4L 퍼즐에서 하지메 씨의 4PAC 퍼즐로 이어지는 발전에서도 그 관계를 엿볼 수 있죠. 마치 퍼즐을 통해 대화를 주고받으며 협동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재밌습니다.

Pin Block Case (Hajime Katsumoto) / Diagonal Twins (Yasuhiro Hashimoto)

지난 글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언급했던 Chained Frames는 심사위원 특별상(Jury Honorable Mention)을 받았습니다. 디자이너는 미우라 코이치 (Koichi Miura) 씨였는데, 정말 예상 밖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평소 퍼즐 스타일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죠. 그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다른 영역의 퍼즐에도 도전하는 모습이 참 반가웠습니다.

코이치 씨는 Tetromino Island 퍼즐로 또 하나의 상을 받았습니다. 한 해에 두 개의 상을 받다니 정말 놀라운 성과입니다.

코이치 씨에게 다가가 축하의 말을 전하고, 제가 가져온 그의 Legal Packing 퍼즐에 사인을 받았습니다. 이로써 저는 가져온 퍼즐들에 디자이너 사인을 받는 임무를 마쳤습니다.

4L (Yasuhiro Hashimoto) / Cast Valve (Vesa Timonen) / Minima 1 (Frederic Boucher) / Waltz (Osanori Yamamoto) / Squary Pack No.5 (Yavuz Demirhan) / Slide Packing (Hajime Katsumoto) / Legal Packing (Koichi Miura) / Rush Hour Train (Edi Nagata, originally Arrow Case)

시상식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이와히로 씨를 비롯해 도쿄에서의 IPP를 준비하는 데 힘써 준 사람들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이와히로 씨는 KPP 회원들이 한국에서도 IPP를 열었으면 좋겠다며 잔뜩 기대를 품었는데, 저 많은 스태프 명단을 보니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이루어진다면 정말 멋진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글을 마치며

먼저 저희 KPP 멤버들을 IPP에 초대해 주신 이와히로 (Iwahiro) 씨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대규모의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데에도 힘써 주셔서 고생 많으셨습니다.

또, 저희와 종종 함께 시간을 보내 주신 오니시 타케시 (Takeshi Onishi) 씨 덕분에 정신 없이 돌아가는 행사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첫날 환영회에 정신이 팔려 굶주리고 있던 저희에게 맛있는 저녁을 대접해 주시기도 했는데 정말 감사했습니다.

여정을 함께했던 KPP 회원들과, IPP에서 대화를 나눈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감사를 전합니다.

처음으로 IPP를 다녀오고 나서 많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한동안 퍼즐에 집중하지 못했는데, 재밌는 퍼즐들을 창작하기 위해 다시금 노력을 쏟아 보려고 합니다. 그 일환으로 3D 프린터도 샀습니다! 조만간 더 많은 퍼즐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IPP 42 퍼즐 리뷰나, 3D 프린터 사용기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제 새 퍼즐 디자인이 될 수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