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글링, 색다른 취미

게임이나 퍼즐처럼 정적인 취미활동만 즐기던 제가 최근에 저글링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저글링에 관심이 생기게 된 계기와 진행상황, 저글링 관련 정보들을 공유합니다.

특별한 시작

하루는 Henry Segerman의 유튜브 채널을 둘러보고 있었다. 대중을 위한 수학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 Numberphile에도 다수 출현한 적 있는 수학자이다. 각종 수학적 의미가 담긴 3D 프린트 출력물들을 흥미롭게 둘러보던 중, Mills mess라는 저글링 패턴을 시각화한 출력물을 발견했다.

수학자가 저글링에 대해 다루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 아니었다. 페이스북에서 만난 해외의 퍼즐러 친구들 중에서도 저글링을 취미로 가진 사람이 종종 보였다. 수학자나 퍼즐러 중에 저글링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은 것은 순전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저글링이 수학적 깊이가 있는 주제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흥미가 생겼다.

Mills mess가 어떤 패턴인지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고, 첫 검색 결과로 Taylor Tries 채널의 튜토리얼 영상을 발견했다.

영상의 설명이 자세하고 친절해서 채널에도 관심이 생겼다. Taylor Tries 채널의 다른 영상들도 구경해 보니 기초부터 고급 기술까지 다양한 저글링 튜토리얼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설명도 하나같이 체계가 잡혀 있었다. 튜토리얼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저글링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저글링볼 구매

저글링볼을 구매하기 위해 검색하다가 레비테이션볼이라는 이름의 공을 발견했다. 저글링을 오래 해 온 판매자분께서 국내에서 저글링볼을 구하기 힘든 것이 안타까워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라고 한다. 취미탐험이라는 채널을 운영하며 직접 저글링 강의 영상을 올리기도 하신다. 판매자분의 전문성이 느껴져 믿고 구매했다.

이틀 뒤, 주문한 저글링볼이 도착했다. 색상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인접한 색인 빨강, 주황, 노랑으로 골랐다.

레비테이션볼

연습 또 연습

저글링볼을 받은 날부터 2–3일에 한 번씩 틈틈이 연습하고 있다. 연습은 Taylor Tries 채널에서 3볼 캐스캐이드 튜토리얼 영상을 보고 따라하면서 진행했다. 3볼 캐스캐이드(3-ball cascade)는 가장 기초적인 저글링 패턴으로, 공의 경로가 옆으로 눕힌 8자를 이루도록 공 세 개를 던지고 받는 패턴이다. 공은 몸 안쪽에서 던져서 바깥쪽에서 받아야 한다.

  • 첫 연습 땐 공 하나를 던지고 받는 것도 어려워했다. 공을 정확하게 옆으로 던져야 하는데 자꾸만 앞이나 뒤로 치우치게 던졌다. 충분히 익숙해지진 않았지만 일단 진행하고 싶은 마음에 공 두 개로, 그 다음 공 세 개로 넘어갔다. 어쩌다 한 번 3볼 캐스캐이드를 7번 잡는 데 성공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습득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하루 종일 떨어뜨린 공을 주우러 다니느라 다음 날 내내 팔다리가 아팠다. 덕분에 두 번째 연습은 첫 연습 3일 뒤에 할 수 있었다.
  • 두 번째 연습 때는 공 두 개를 던지고 받는 것이 조금 정교해졌다. 앞이나 뒤로 던지는 일이 거의 없어졌는데, 대신 힘조절에 실패해서 너무 낮거나 멀리 던지는 일이 많았다. 공 세 개일 때는 아직 앞이나 뒤로 던지는 일이 잦았다.‬ 3볼 캐스캐이드 10캐치를 달성했다!
  • 셋째 날엔 3볼 캐스캐이드 18캐치를 달성했다. 이제는 첫 공만 잘 던지면 평균 5-10캐치 정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 이후에도 꾸준히 연습하고 있지만 아직 눈에 띄는 진전은 없다. 공을 던질 때의 정확도가 떨어져서 그런 것 같다. 현재 목표는 1분 이상 3볼 캐스캐이드를 성공하는 것이고,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공 두 개를 정교하게 던지고 받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해야겠다.

물론 꾸준히 연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큰 진전이 없을 때 연습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저글링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인 “저글링 속에 수학적 원리가 숨어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저글링에 숨은 수학

저글링 패턴에는 캐스캐이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초적인 패턴으로 Fountain, Shower, Columns 등이 있고, 살짝 난이도 있는 패턴으로는 서두에서 언급한 Mills mess나 Burke's barrage, Rubenstein's revenge, 423 등이 있다. 다양한 패턴 이름 중에 423이 특히 눈에 띈다. 왜 하필 4, 2, 3이라는 숫자로, 왜 하필 그 순서로 이름붙은 걸까?

답은 저글링 패턴을 표기하는 방법 중 하나인 “사이트스왑(Siteswap)”에 있다. 대부분의 저글링 패턴에서는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가며 공을 던지는데, 공을 던지는 높이에 따라 공을 받고 다시 던지기까지의 시간이 달라진다. 이 시간이 단위 시간의 홀수배이면 공을 던지는 손과 받는 손의 위치가 다를 것이고, 짝수배이면 던지는 손과 받는 손의 위치가 같을 것이다. 각 공이 공중에서 체류하는 단위 시간을 순서대로 적은 것이 사이트스왑이다.

3볼 캐스캐이드의 경우 왼손에서 던진 공이 공중에 있는 동안 오른손, 왼손의 공을 차례로 던진 뒤, 오른손으로 처음 던진 공을 받으므로 공이 3의 단위 시간동안 체류하게 된다. 따라서 3볼 캐스캐이드의 사이트스왑은 ”333...”의 반복되는 부분을 생략한 ”3”으로 표기한다. 재미있는 점은 Mills mess의 사이트스왑도 3이라는 것이다. 사이트스왑 표기법은 손을 어떻게 꼬고 공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따지지 않고, 오직 공이 공중에 체류하는 시간만을 나타낸다.

423 패턴은 사이트스왑이 423이기 때문에 해당 이름이 붙었다. 정말 단순하기 짝이 없는 작명이다. 패턴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먼저 왼손에서 던진 공이 4의 시간동안 공중에서 체류하면, 오른손은 한 박자 가만히 있는다. 오른손이 가만히 있는 이유는 2를 특별 취급하기 때문인데, 오른손으로 공을 던져서 그 사이에 오른손을 사용하지 않고 다시 오른손으로 받는 행동은 큰 의미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이제 왼손의 공을 3볼 캐스캐이드 하듯이 오른쪽으로 던진다. 마지막으로 처음 던진 공을 왼손으로 받으면서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다시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면 된다.

사이트스왑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재밌는 이야기가 더 많지만 글의 범주에서 벗어나므로 Taylor Tries 채널의 소개 영상과 위키피디아 문서를 링크해 두고 턴을 마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다뤄보고 싶다.

유용한 링크 모음

마지막으로 저글링에 관한 유용한 링크들을 모아 보았다.

  • Taylor Tries 유튜브 채널: 글에서 계속 언급한, 저글링을 주로 다루는 채널이다. 저글링 강좌 영상 뿐만 아니라 직접 새로운 저글링 트릭을 배우고 도전하는 영상, 다른 저글러들의 영상에 반응하는 영상 등도 올라온다.
    • 3볼 캐스캐이드 튜토리얼: 3볼 캐스캐이드를 시작하는 법 뿐만 아니라 어떤 저글링 공을 골라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짤막하게 다룬다. 다만 국내에서는 레비테이션볼을 사는 것을 추천한다.
  • 취미탐험 유튜브 채널: 레비테이션볼을 만든 곰씨님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특히 학교 수업용으로 만들어진 영상이 많아서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저글링을 개인적으로 배우기 시작할 때도 참고하기 좋다. 저글링 외에도 다양한 취미활동을 다룬다.
  • Reddit /r/juggling: 레딧 저글링 커뮤니티
  • Juggling pattern - Wikipedia: 기본적인 저글링 패턴들이 움직이는 그림으로 소개되어 있다.
  • Library of Juggling: 잘 알려진 저글링 패턴들을 모아 둔 웹사이트

한국에서는 크게 활성화된 저글링 커뮤니티를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혹시 잘 아는 독자분이 계신다면 제보 바랍니다.